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프랑스 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소련]]이 건국되자 소련은 프랑스에도 정치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이 멸망했을 때, 러시아 귀족들이 프랑스로 대거 피난을 갔다.[* 프랑스어를 자주 썼던 러시아 귀족들은 [[프랑스인]]들로 동화되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국가였던 프랑스는 영국,독일과 더불어 소련을 가장 먼저 처리해야할 적으로 인식하였다. 프랑스 역시 적백내전 당시 백군을 지원하였으며, [[소련-폴란드 전쟁]] 당시 [[폴란드 제2공화국]] 측을 지원하였던 바 있다. 그러나 1933년, 독일 내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프랑스는 독일의 급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1934년 3월, 프랑스의 외무장관이던 장 바르투[* Jean Louis Barthou(1862~1934)]가 소련을 도우면 독일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소련과의 협력이 진전되어 소련-프랑스 공동안보체제를 결성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바르투 외상이 암살당하면서 이 조약은 무효화되고 말았다. 이로보아 러시아와 프랑스는 소련시절부터 현재까지도 서로 가상적국으로 견제를 해왔던 면도 있지만,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완전한 반러성향의 국가는 아니라서 [[나치 독일]]을 막아내기 위해 어느정도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쪽의 외교노선을 탔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프랑스와 소련은 [[상임이사국]]이 되었고 외교관계를 유지했지만 프랑스는 자유진영에 속했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소련이 [[알제리 전쟁]]이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식민지 반군들을 지원해주기도 했고. 한 편 [[제2차 중동전쟁]]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이 함께 영국과 프랑스에 윽박지르는 상황도 나왔다. 그래도 냉전시기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양반이였던 편. 이는 기본적으로 프랑스와 소련 사이에 동서독과 폴란드라는 완충지대가 있어 서로 직접 충돌할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 프랑스의 핵개발을 미국과 영국이 방해해 드 골이 나토에서 탈퇴하는 등 프랑스가 독자노선을 선택한 영향도 크다. 소련 입장에서 굳이 프랑스와 척을 져 자유 진영의 결속을 단단히 다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 1990년에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프랑스를 방문해 양국간의 새로운 협력관계 설정 및 EC의 소련 경제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41803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